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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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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Aug

황금 미역

작성자: 엔케 조회 수: 2628

중국의 7살 난 어린 공주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미욤 공주는 중국 왕족의 마지막 후손이자 비련의 상속녀이다.
그녀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서울 한 복판의 모든 전광판에는 미욤 공주를 위한 광고로 난리가 났다.
소비벽이 심한 그녀 덕분에 한 번 다녀간 지역에서는 매상이 엄청나게 오르기 때문이다.
쇼윈도 안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는 나에게 한 노숙자가 나타나 시야를 가렸다.
"어이, 나랑 재미있는 놀이를 해볼까?"
영락없는 노숙자 행세를 하고 있었지만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를 나는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시청 한 가운데의 분수가로 데려갔다.
"여기서 내가 엄청난 돈을 벌게 될거야."
그리고 나를 분수로 떠밀었다. 노숙자는 물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발로 누르고 있었다. 나는 곧 의식을 잃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잘 모르겠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어느 병동의 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노숙자는 옆에서 내가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깨어났군. 보여줄 것이 있어. 따라오게."
우리는 다시 시청의 분수가 있는 곳으로 갔다.
며칠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오늘 미욤 공주의 입국 환영식이 있는 날인 것은 분명하다.
인파를 헤치고 우리는 공주의 카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있었다.
미욤공주는 갑자기 차를 멈추고 분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분수 안을 쳐다보고는 뭔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행진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정이 넘도록 분수 옆에서 공주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미욤공주가 무슨 이유로 다시 찾아 온다는 거에요?"
"기다려 봐."
잠시 후 몇명의 검은 그림자를 데리고 정말로 미욤공주가 나타났다.
나는 노숙자가 시키는 대로 함께 분수 안으로 들어갔다.
분수 안은 내가 며칠 전 물에 빠졌을 때의 깊이보다 더 깊어진 것 같다.
달 빛을 받아 황홀하게 빛나는 수초를 발견했다.
'저것은 미역이 아닌가?'
가만히 보니 보통 미역이 아니었다. 온통 황금으로 얼룩진 미역이 타일 바닥을 비집고 자라난 것이다.
노숙자의 신호를 따라 우리는 함께 미역을 따기 시작했다.

미욤공주는 미역을 참 좋아한다.
노숙자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공주를 만날 것인지, 어떻게 하면 미역을 공주에게 선물할 것인지를 모두 계획해 놓았다.

당시 내가 수면위로 떠오르려 할 때 그는 이미 나의 신발끈을 풀어 타일 틈새에 끼도록 했다.
주변 사람들이 볼새라 나를 도와주는 척 하면서 계략을 짠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포크레인 중장비 기사를 매수했다.
기사는 나를 건지는 도중에 지하 수도관과 연결되는 배수로의 마개를 부서뜨렸다.
수도가 터지면서 분수 밑바닥의 타일이 땅으로 꺼져버렸고 깊은 웅덩이가 생겼다.
미욤공주의 방문일정 탓에 주변의 모든 공사는 철수했고 그는 매일 밤 미역을 심기 위해 분수가를 찾았다.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미역은 마치 황금으로 된 것 처럼 보였다.
공주는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밤마다 분수가를 찾았다.
깨끗한 지하수로 재배된 황금미역을 따먹기 위해서다.
공주는 행복해 하며 직접 물속에 뛰어 들어가 미역을 따먹기도 했다.

그는 이 모든 계획을 위해 일부러 노숙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
심야에 의심없이 분수가를 기웃거릴 수 있는 사람으로 노숙자가 적격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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